인공지능 복제인간의 원조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오늘은 얼마전 '오토마타' 영화평에서 언급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볼게요. 이 영화는 개봉당시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ET>와 같은 해인 1982년 개봉했었는데요, 당시는 여러 언론과 평론가들 사이에 혹평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이 영화의 진면목을 알아 본 영화 매니아들에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11년 후인 1993년에 개봉을 하게 된 겁니다. 당시는 인터넷은 전화모뎀을 사용하던 시기라 불법 복제는 있을지언정 불법 다운로드 같은 건 있지도 않을 시기였으니 가능했었죠. (※ 이하 영화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 대학생 시절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블레이드 러너 엔딩장면은 극장 개봉판과 감독판이 완전히 다릅니다. 마지막 장면이 밋밋하다는 이유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작자에 의해 엔딩 장면을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와 레이첼(숀 영 분)이 비행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설정으로 바뀌어 버렸거든요. 이 영화가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제작자에 의해 강제 편집된 엔딩장면 때문이 아니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것 하나로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이후 감독판을 내 놓으면서 스콧 감독의 의도대로 데커드와 레이첼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는 원래의 장면을 찾았는데, 그때부터 이 영화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먼저 줄거리를 한 단락으로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2019년 타이렐사는 리플리컨트(Replicants)라 불리는 복제인간을 만들었는데 외모와 지능면에서 인간과 동일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이중 넥서스6(Nexus 6)은 육체적인 능력은 인간을 능가했고, 지능 면에선 그들을 창조한 유전공학자들과 같습니다. 이들 복제인간들은 지구 밖 다른 행성의 식민지화를 위한 노예로 이용했는데, 넥서스6 중에서 전투 팀이 식민지 행성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키자, 지구로 도망쳐 온 복제인간들에 대한 체포령와 사형선고가 내려집니다. 그들의 사형을 인간들은 '죽음'이 아니라 '은퇴(Retirement)'라 불렀습니다.

 

유명한 SF영화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 영감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역사상 가장 많은 영화들에 영감을 주었거나 원작 소설을 제공한 소설가는 '필립 K. 딕'을 들 수 있습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 Total Recall, 1990>은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니어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했습니다. 그리고 조지 놀피 감독의 <컨트롤러, Controller, 2011>또한 필립 K. 딕의 '조정국'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라이언 존슨 감독의 <루퍼, Looper, 2012> 또한 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고요, 오늘 이야기하는 <블레이드 러너> 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이 영화를 필립 K. 딕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고로 걸작이라 함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야 붙여지는 이름일 텐데요, 이 영화 또한 개인적으로는 걸작이고 부르고 싶네요. 물론 3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CG(컴퓨터 그래픽) 처리나 당시 유행했던 구성(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미래의 도시는 거리에서 연기가 나는 무대미술 등)은 촌스럽습니다만, 그 속에 꿈틀대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와 그냥 살아 있는 것과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통찰력은 매우 돋보입니다. 복제인간들은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며 미움, 사랑, 두려움, 분노, 부러움 등의 감정을 모두 느끼며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리지만, 인간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또 깨며 도망치는 복제인간의 등 뒤에서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리고 죽음 위로 느리게 흐르는 반델리스의 몽환적은 음악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막히게 아름답습니다.

 

넥서스6는 4년 밖에 살지 못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삶을 연장하고 싶던 복제인간 로이(룻거 하우어 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자신들을 창조했던 조물주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이제 더 이상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만 살아가야하는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란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복제인간 로이와 그를 죽여야 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가 만납니다.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가진 로이는 데커드를 마지막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위기에 처한 데커드의 생명을 구해줍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정없이 총질을 해대던 데커드를 살려줌으로써 우리가 늘 말하는 '인간답게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마지막 복제인간 로이의 대사가 참 가슴이 아픕니다.

 

난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그 기억이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그리곤 문제의 엔딩장면. 데커드와 복제인간 레이첼은 이들의 사랑을 묵인해준 동료경찰 덕분에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이들도 그 기억이 모두 사라지겠죠. 빗속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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