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기억하는 컨저링의 공포, 영화 '애나벨'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공포영화 '컨저링'을 기억하십니까? 2013년에 혜성처럼 등장해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로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였죠. 당시 1999년 작품인 <식스센스>가 14년간 가지고 있던 공포영화 최다관객의 기록을 깨고, 단박에 국내에 개봉한 외화 공포영화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새벽 3시 7분이 되면 멈추는 시계와 동시에 내 심장도 멎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껴본 사람들은 이 시각이 지금도 공포스러울 겁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 '애나벨'은 컨저링에서 장식장에 들어 있던 악령이 깃든 인형을 소재로 한 스핀오프(Spin-Off) 영화인데요, 전작을 본 관객이라면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공포감이 들기에 충분한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 또한 피 흘리는 악령이 쫓아오는 것 같은 무서운 장면이 등장하진 않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인형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오감을 자극하는 공포를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여주인공 이름 또한 '애나벨 월리스'라 뭔가 우연이 아닌 것 같은 현실감도 드네요.

 

애나벨은 작년에 한국에선 15세 관람가로 개봉했었는데, 미국에선 잔인한 장면도 없고 성적인 묘사도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R등급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너무 무서워서'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선 강렬한 공포 때문에 R등급을 받기도 하나 보네요. 전 다른 것 보다 이게 더 신선한데요? 아무튼 컨저링의 인형 '애나벨'은 초자연현상 전문가인 워렌 부부가 의뢰 받은 기이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는데, 오프닝과 엔딩을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공포감을 극대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컨저링의 제임스 완 감독이 이번엔 제작자로 참여했고 <인시디어스: 두 번째의 집>의 촬영감독 R. 레오네티가 이번엔 연출을 맡아 더욱 더 기대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컨저링에 짧게 등장했던 애나벨 사건에 다시 촛점을 맞춰 시간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 날, 곧 태어날 아이를 기뻐하는 '미아(애나벨 월리스 분)'에게 남편 '존(워드 호튼 분)'은 아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인형을 어렵게 구했다며 하나 사오는데, 그 인형이 바로 애나벨입니다. 그후로 집안에서 물체들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괴한의 습격을 받는 등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80년대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레오네티 감독은 관객들이 시대적 배경을 그때쯤으로 봐주길 원하는 듯 미술분야에 공을 들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흔들거리는 흔들의자, 지직거리는 턴테이블, 치익~ 소리를 내는 아날로그 텔레비젼,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등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소품들로 향수 어린 공포를 유발하려는 영리함도 돋보입니다. 지 멋대로 작동하는 재봉틀 등으로 사물인터넷 시대를 예견하는 것 같아 살짝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하지만 그 장치들은 매우 효과적이고 주요했습니다.

 

하지만 전작의 퇴마사의 자리를 신부가 대신하고, 악마와 신의 대결이라는 전근대적인 대결구도의 모습은 공포영화의 역사를 약간 후퇴한 측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캐릭터의 설명이 빈약해서 미아를 위해 대신 죽는 동네주민 에블린의 뜬금없는 죽음 등 이해하기 힘든 구성도 눈에 거슬리네요. 하지만 무서운 장면이 거의 없이 이렇게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에요. 이야기 자체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지만 99분간의 런닝타임 동안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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