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만 18점, 진정한 보물창고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든 그 지역을 잘 알고 싶다면, 그곳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공주는 한때 백제의 수도였기 때문에 백제와 공주의 연관관계를 알고 싶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국립공주박물관을 가시면 됩니다. 박물관에는 백제의 유물 4,600여점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이 중에서 국보가 18점, 보물이 4점 포함되어 있으니 보물창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백제는 한성, 웅진, 시비의 시대로 구분합니다. 웅진은 지금의 공주를 말하는데요,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장수왕에게 밀려 475년 문주왕은 백제의 도읍을 웅진으로 천도한 뒤 이곳에서 64년 동안 웅진시대를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무령왕과 욍비의 무덤인 무령왕릉이 생겼는데요, 삼국시대의 분묘 중에서 그 주인이 정확하게 밝혀진 최초의 무덤이라 역사적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하겠습니다. 박물관 바깥에는 온갖 석조와 석탑 유물들이 즐비한 것 보니 내부는 어떨까 내심 기대가 됩니다.

 

 

 

 

 

 

입구에서 만난 빨간 앵두나무 꽃이 정말 아름답네요. 보통은 하얀색으로 피는 게 많은데 여기는 빨간색이 피었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있다니! 집 앞마당에 꼭 심어야겠네요.

 

 

 

 

 

 

먼저 본 관람을 앞서 맞은 편에 있는 특별전시실 쪽엔 우리문화체험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 문화를 테마로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어떤 것들이 있냐면요.

 

 

 

 

 

 

가야금이나 장구 같은 우리 전통 악기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고, 색연필로 문지르며 백제 문양을 떠내는 프로타주, 유물조각 맞추기,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 탁본 뜨기, 기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수막새를 지점토로 찍어내기, 그 외에도 무령왕릉 벽돌 쌓기나 주사위 퍼즐 맞추기 등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재미있을 법한 체험거리가 있습니다.

 

 

 

 

 

 

1층 본 전시실인 무령왕릉실로 들어왔습니다. 1971년 여름, 송산리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정비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무령왕릉은 무덤이 만들어 진 이후로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발굴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당시 놀라웠던 발굴과정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우루루 빠져나가고 전시실이 한가해졌네요. 이제 제 차례가 왔습니다. 먼저 1,500년의 세월 동안 무덤을 지탱하던 벽돌인 ‘묘전’이 눈에 띄네요.(사진 좌측) 벽을 지탱하던 묘전은 직사각형으로 생겼고, 지붕을 지탱하던 것들은 동그란 모양에 맞게 위아래의 폭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백제인들의 섬세한 건축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무령왕릉의 발굴 당시 바닥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두었습니다. 첫 출입구인 널길에는 왕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했던 동제그릇과 수저, 그리고 항아리 등이 있고요, 그 바로 뒤로는 묘지석과 오수전이 놓여 있네요. 묘지석 때문에 이곳에 누가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던 핵심 중의 핵심이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삼국시대의 묘지 중에서 주인을 알 수 있는 건 이것이 최초였기 때문에 현재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오수전은 중국의 철전인데, 무덤이 위치한 땅을 토지신에게 그 돈으로 구입한다는 의미인데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엇을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반영되었다 하겠습니다. 그 바로 뒤로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가 입구를 바라보고 서 있군요. 실물들은 아래에서 또 보여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이 실제 발굴된 묘지석입니다. 현재 국보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왼쪽이 왕의 것이고 오른쪽이 왕비의 것입니다.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62세인 계묘년(523년) 5월 7일에 붕어하시고, 을사년(525년) 8월 12일 관례에 따라 대묘에 안장하였음을 기록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비의 것도 마찬가지로 묻힌 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왕비 지석의 뒤편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토지신(土地神)에게 무덤 자리를 돈으로 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요, 다른 백제의 무덤들이 모두 도굴당했지만 이곳만 무사한 것을 보면 토지신이 이곳을 지켜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까 복원한 모습에서 봤던 ‘진묘수’가 바로 이겁니다. (국보 제162호) 국립공주박물관 팜플렛과 입장권에 그려져 있는 바로 그 동물입니다. 비현실적이고 신령스러운 이 동물은 무덤에 안장된 사람을 지켜준다는 의미인데요, 중국의 풍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500년이나 이분들을 지켜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각종 금 장식품들도 대거 출토되었는데요, 왼쪽은 왕 금제 뒤꽃이(국보 제159호)고 오른쪽은 왕 금제 귀걸이(국보 제156호)입니다. 모두 왕이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금은 여전히 변함없이 반짝이는 게 참 아름답네요. 삼국시대의 금속 세공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크기가 딱 적당하고 금으로 화려하게 용과 봉황을 장식한 둥근 고리 큰 칼은 주로 왕의 무덤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인데요, 주인공이 최고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신라시대의 유물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삼국시대의 한반도의 문명이 얼마나 발전하고 융성했는지 이런 유물들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허리끈 장식 또한 이렇게나 섬세하고 아름답네요. 그런데 오른쪽 사진을 보면 하트모양의 금장식들이 주렁주렁 보이시죠? 하트의 유래가 13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던데, 우리 조상들은 5-6세기에서 사용했어요!

 

 

 

 

 

 

받침대처럼 생긴 이것은 왕(왼쪽, 국보 제165호)과 왕비(오른쪽, 국보 제164호))의 머리와 다리를 받치는 베개와 발받침입니다. 시신을 관 속에 똑바로 안치시키고 돌아가신 분들께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계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유물이 바로 이 금제관 장식이었죠. 무령왕 유물에서도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금제관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왼쪽이 왕의 것(국보 제154호)이고 오른쪽이 왕비의 것(국보 제155호)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빛깔과 정교한 문양에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묻어 나옵니다.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은 모습이 조금 다른데요, 이걸 비교해보는 것도 관람의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싶네요.

 

 

 

 

 

 

수많은 국보들을 구경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막 흥분되더군요. 왕비가 사용하던 보석들인 위 사진들도 모두 국보입니다. 왼쪽 왕비 금제목거리(국보 제158호)와 오른쪽 왕비 금제귀걸이(국보 제157호) 또한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웅진시대의 백제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이 은팔찌(국보 제160호)를 가지고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을 중요시한 당시의 문화적 풍토를 엿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팔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내용은 언제 누가 누구에게 이 팔찌를 만들어줬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경자년(庚子年, 520년) 2월에 다리(多利)라는 이름의 장인이 만들어 대부인(大夫人), 즉 왕비를 위해 230주이를 들여 팔찌를 만들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230주이는 아마도 무게를 뜻하는 것 같네요.

 

 

 

 

 

 

왕족들이 사용하던 거울 또한 남다르네요. 이 청동거울(국보 제161호)은 뒷면에 볼록한 손잡이 주변으로 네 마리의 짐승과 짐승을 사냥하는 신선이 그려져 있는데요, 이런 거울은 일상적으로 사용된 소품이라기 보다는 지배자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서의 성격이 있습니다. 이게 왜 거울이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뒷면을 보면 편편한 동판에 얼굴이 비칩니다. 그러고 보면 고대에 살았던 평민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얼굴 한 번 못보고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겠죠?

 

 

 

 

 

 

박물관에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만 전시한다면 이곳의 이름이 ‘국립공주박물관’일 리가 없겠죠? 2층에 있는 다른 전시관에는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고대문화실 전시관도 있습니다. 무령왕을 넘어 백제와 통일신라의 전체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당시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도 많이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247호)’이 눈에 띕니다. 보살이란 석가의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보살상은 조각이 예리하고 중후한 멋이 있어서 백제 불상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 중에 하나 입니다. 묘한 미소가 아름답네요.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서 누구의 무덤인지, 거기에서 나온 유물들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다 보면 백제의 문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박물관의 규모는 다른 국립박물관에 비해 조금 작을 수 있습니다만, 백제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그래서 공주여행에서 이곳을 배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봐야겠습니다. 추천합니다.

 

+ 관람시간 : 평일 9시~18시, 주말/공휴일 9시~19시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주차료 : 무료

 

 

공주여행기 7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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