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놀이동산 '창경원'의 아픔을 간직한 '창경궁'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한국에서,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에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기존에 올렸던 각종 궁궐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고, 오늘 보여드릴 창경궁에서도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최근까지 '창경원'이란 이름의 놀이동산이었죠.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어린이날 창경원 가는 것이 아이들의 꿈이었으니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인류 역사상 점령국이 점령지에 있는 왕궁을 놀이동산으로 바꿔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창경궁만 빼고요. 정말 무례하고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몰지각한 나라임은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아픔을 간직한 궁궐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조선시대의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입니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경복궁을 법궁으로하고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이용하는 양궐 체제였는데요, 그런데 역대 왕들이 경복궁 보다는 창덕궁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자손들이 번성하면서 창덕궁의 생활공간이 협소해져 갑니다. 그래서 조선의 아홉 번째 왕인 성종은 왕후와 대비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바로 옆으로 궁궐을 붙여지었는데요, 그게 바로 창경궁입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입니다. (보물 제384호) 들어가 보겠습니다. 참고로 여러 포스팅에서 말씀 드렸듯이, 궁궐의 정문에 '화(化)'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옛날 사진 한 번 볼까요? 위 사진들은 1976년 봄 창경원으로 몰려든 사람들 사진입니다. 매표소와 입구 앞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요, 이 사진을 보고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과거는 결코 사라진 게 아닙니다. 이걸 기억하고 후손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겠습니다.

 


 
 

 

왕과 신하와 백성이 한 곳에서 교감하는 '외전'. 맑은 물 흐르듯, 올바른 정치를 바라다.

 

 

애초에 왕실 가족들이 머무는 생활공간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창경궁은 내전보다 외전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게 특징입니다. 참고로 외전은 업무를 보는 공간이고 내전은 왕족들이 머무는 생활공간입니다.

 

 

 

 

 

 

홍화문을 지나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옥천교. 보물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궁궐의 입구에는 개천이 있고 그 위로 다리가 있는데요,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정전인 명전전 앞으로는 명정문이 있는데요, 이 문 또한 보물 제385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창경궁에서는 네 명의 조선왕들이 태어나셨는데요, 장조, 정조, 순조, 헌종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화적 전성기를 열었던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1800년 6월 승하하셨습니다.

 

 

 

 

 

 

명정문을 들어서면 현재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정전이 보입니다. 단층으로 아담하게 지어졌지만 한국에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이 주변 전각들은 모두 헐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섰고, 1911년에는 박물관까지 지어지며 창경원으로 그 격상을 낮춰 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을 깍아 도로를 내고, 벚꽃을 심어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 백성들에겐 벚꽃놀이를 하도록 유도했죠. 훗날, 1984년에 들어서 덕지덕지 분칠을 해있던 이곳의 동물원, 식물원 등 위락시절은 철거되었고, 이듬해 다시 고궁으로 탈바꿈 되었습니다.

 

 

 

 

 

 

명정전 안을 들여다 볼까요? 이곳에서 수많은 정사를 논하셨을 당시 왕들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네요. 천장에는 덕수궁의 용 장식과는 다르게 봉황 두마리가 장식되어 있군요. 덕수궁을 자세히 보고 싶은 분들은 여기로 → [국내여행/수도권] - 서울 가볼만한 곳 '덕수궁'의 모든 것(클릭).

 

 

 

 

 

 

명정전 뒤편으로 돌아가면 만나는 숭문당. 이 전각은 왕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입니다. 현판은 영조의 친필인데요,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네요.

 

 

 

 

 

 

넓은 마당에는 함인정이란 전각이 한 채 놓여 있는데요, 이곳은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왕이 접견하는 곳입니다. 사방이 뚫려 있어 겨울에는 사용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왕실 여성들과 가족이 머물던 공간 '내전'. 구중궁궐의 삶과 희노애락을 기억하다.

 

창경궁은 성종의 효심으로 지어진 궁궐입니다. 세조의 손자였던 그는 작은 아버지인 예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요, 즉위 당시 13세로 나이가 어려서 어른이 될 때까지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었죠. 할머니 정희왕후, 어머니 소혜왕후, 그리고 작은 어머니인 안순왕후 등 세분을 모시게 되었던 성종이 그들을 위해 마련한 곳입니다.

 

 

창덕궁과 담을 맞닿은 곳에는 경춘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인데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이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곳 또한 일본이 심어 놓은 벚꽃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요, 1984년 벚나무와 동물원을 걷어 내고 다시 소나무가 심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담장 너머로는 창덕궁의 전각이 빼꼼이 보이네요. 조선시대에는 자유롭게 다녔겠지만 지금은 입장료와 관리 때문에 문을 닫아 뒀는데요, 같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도록 해줬음 좋겠네요.

 

 

 

 

 

 

담벼락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만나는 통명전입니다. 현재 보물 제81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데요, 왕과 왕비의 침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일대는 내전의 가장 중심되는 곳인데요, 그래서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통명전 주변으로는 연못도 있고 샘도 있는데, 건물 뒤편으로는 봄이면 꽃이 피는 꽃계단도 둘러쳐 있어요. 이곳에 얽힌 이야기는 많지만, 그 중에서 희빈 장씨가 이곳에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해괴한 물건을 묻었다가 사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 추워서 통명전 앞 연못엔 물이 없는데, 봄엔 꽃과 물이 채워져 있겠죠?

 

 

 

 

 

 

이 곳은 대비의 침소였던 양화당입니다. 대비가 머물던 침소라 그런지 툇마루 앞으로 계자 난간을 둘러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영춘헌과 집복헌이에요. 옆으로 붙어 있습니다. 이 주변에는 후궁들이 밀집해서 거처하던 곳인데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순조가 집복헌에서 태어났고 정조는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승하하셨죠.

 

 

 

 

 

 

당시 후궁들이 단체 생활을 하던 곳이 이렇게 생겼군요. 마당 가운데로 네모난 하늘이 이채롭네요.

 

 

 

 

 

 

창경궁 전각 지붕 위로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네요. 폐관시간이 되어서 안타깝게도 춘당지와 대온실은 들어가보질 못했어요. 다음에 조금 일찍 들러서 그곳도 꼭 들러봐야겠네요.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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