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순간 그녀에게 빠지는 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영화를 보고 리뷰를 남기는 일이 가끔은 곤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딱 두 가지 인데요, 영화가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형편없거나 또는 너무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나 같은 허접한 글쟁이 나부랭이가 감독의 뜻에 반하는 엉뚱한 글을 적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은 후자에 속하는 영화였어요. 이 영화는 미헬 파버르의 동명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는데 조금 쉬웠어요. 그런데 전혀 아무런 내용도, 심지어 포털에 나와 있는 영화의 줄거리마저도 읽지 않고 이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뭐지?" 라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겠더군요.

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2014년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을 해대서 최근에야 이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포털 사이트의 '다운로드' 버튼 아래에 있는 줄거리를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냥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영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영화가 의도하는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가 있을 거에요. 시놉시스가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그건 소설의 내용을 가져다 쓴 거더라고요. 영화에서는 시놉이 말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그러진 않고요,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로라(스칼렛 요한슨 분)'라는 장면이나 대사도 전혀 없거든요.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이름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무튼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본다고 재미가 반감되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좀 더 폭넓은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 이름이 '로라'인 걸 알지만, 전 그냥 '외계인'이라 부르겠습니다. 여자 외계인(스칼렛 요한슨)은 어느 날 지구에 와서 지구인 여자의 껍데기를 쓰고 언어를 공부합니다. 남여 한 쌍이 지구에 왔는데, 이들은 아마도 식량이 됐든 에너지가 되었든 지구인 남자의 몸이 필요한가 봅니다. 여자 외계인은 남자를 유혹해서 밴에 태워서 어느 공간에다 이들을 저장합니다. 남자 외계인은 여자를 감독하고 뒤처리를 하는 일을 맡은 것 같네요. 여자는 자신이 쓰고 있는 지구인 껍데기가 얼마나 예쁜지도 모른 체 남자들을 유혹하고 다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사냥감으로만 여겼던 남자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그녀는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존재이지만 인간의 쾌락 본능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예쁜 지구인 여자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남자를 꼬드겨 아지트에서 그들을 빨아드립니다. 독특한 이미지로 가득 찬 화면 속에는 여자 외계인이 남자를 꼬드기고 옷을 벗고,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를 저장하고 다시 옷을 입는 시퀀스가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온통 검은 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바닥이 있고 남자들은 모조리 그곳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인데요, 튜닝이 잘 되지 않은 이상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 같은 음산한 음악과 검은 화면의 남여 모습이 정말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일부 영화에 무지렁한 기자들은 스칼렛 요한슨의 나체에만 몰두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내기도 하던데, 절대 이 영화는 노출만을 강조하는 얼치기 영화가 아닙니다.

로드무비 형식을 띈 이 영화가 더 흥미로운 건 일부 장면들은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상황을 담고 있다는 거에요. 안간의 두껍을 쓴 여자 외계인이 밴을 타고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부분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고요, 몇몇 사람들은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실제 상황을 촬영했습니다. 덕분에 더 사실감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언더 더 스킨>에서는 매우 절제된 최소한의 대사만을 사용하는데요, 몇 안 되는 대사는 모두 남자를 유혹할 때만 등장해요. 이는 최대한의 변죽들은 제외한 체 관객들을 그 속으로 몰입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호한 이미지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글레이저 감독의 의도인 것 같은데요, 적막하지만 기괴한 OST선율과 사냥감을 저장하는 검은색 공간은 마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멋진 예술작품이나 공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시퀀스는 바닷가에서 남자를 사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파도가 크게 치던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아기와 강아지를 데리고 쉬고 있는데 강아지가 바다에 빠져 여자가 구하러 뛰어듭니다. 아이를 보던 남편은 아내의 위험을 직감하고 자신도 바다에 뛰어들지만 둘 다 목숨이 위태로워 지는데요, 이를 본 다른 남성이 남편을 구해줍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목숨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다시 아내를 구하러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남편을 구해줬던 남자는 힘에 겨워 해변에 쓰러집니다. 로라는 해변에 쓰러진 남자를 사냥해서 끌고 가는데요, 이 장면에서 지금 막 파도로부터 부모를 잃은 18개월 된 아기가 울고 있지만 로라는 이런 끔찍하고 가슴 아린 고통에 공감할 리 없습니다.

 

감독이 말하려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끼긴 했지만 누가 이 질문을 저에게 한다면 빠르게 대답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구인의 두껍을 쓴 검은 외계인은 아마도 다른 이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목적에만 충실한 현대인을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겉만 보고 순간의 욕망을 느낀 사람들은 그곳이 사지인지도 모른 체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날개를 아무리 퍼덕거려도 유리창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벌레처럼 그 유혹은 달콤하고도 치명적입니다. 인간의 껍데기를 쓴 로라는 자신이 사랑 받고 있지만 정작 사랑 받고 있는 건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알맹이가 껍데기를 안쓰럽게, 그리고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묘한 공감이 밀려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그 어둠에 빠져버리고 싶은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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