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영화 '셰임(Shame)' 설명서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아... 스티브 맥퀸 감독. 당신은 정말 대단한 영화꾼인것 같습니다. 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되길래 이렇게 지독한 명작을 만들 수 있는지 감격스러울 정돕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 <셰임, Shame>에 관한 대부분의 리뷰들을 보면 극찬을 하는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맥퀸 감독이 숨겨놓은 수많은 메타포(=은유)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 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전문적으로 영화를 다루는 매체의 리뷰에서도 아직까지 이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여성과의 '관계'에 미친 한 남자의 이야기쯤으로 치부해버리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란 이야기를 받을 정도면 이 영화가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짧은 식견으로 감독이 숨겨놓은 이 영화의 메타포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으로) 조금이나마 밝혀드리겠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성 욕구과잉의 한 남자 이야기로 생각하셨다면 제 리뷰가 아마 반전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군요.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포스팅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분석임을 미리 밝힙니다.

※ 이 글은 소설가 최민석 작가 의견 인용이 들어있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영화 <셰임>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현대의 결혼제도와 가족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되도록(?) 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즐기려는 약간은 허무주의에 가깝고 '그것'에 미쳐있는 한 남자의 우울하고 과민한 인생살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줄거리는 영화를 흐르는 큰 물줄기의 표면일 뿐입니다. 많은 영화평론가들의 리뷰처럼 '현대인의 허무한 욕망'이란 주제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영화 속 남매인 '브랜든 설리반(마이클 패스벤더, Michael Fassbender)'과 씨씨(캐리 멀리건 ,Carey Mulligan)의 기행들이 이해되지도 않고 설명이 되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 아래로 흐르는 큰 소용돌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감독이 이야기하는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씨씨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이하 작성하는 글들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속 은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하나 발설하면 남자주인공 브랜든은 여동생 씨씨는 서로를 이성으로서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발설하진 않았지만 아마 이 둘은 어린 시절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브랜든의 회사에서 그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나오는 것은 그가 그 어떤 정신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는 어린 시절 사랑한 여동생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해 버렸고, 더 이상 그녀를 탐하기엔 현대 사회의 규범이 옭아매는 수치심(Shame)에 다른 여성를 탐닉하며 결혼이란 제도를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조금 주의 깊게 감상하신 분들이라면 영화에서 여동생 씨씨의 등장이 단순한 주변의 변죽을 울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녀 자체가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자동응답기의 목소리는 씨씨였다.


브랜든 아파트의 자동응답기에는 매일 아침 옛 연인의 음성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브랜든, 제발 전화 받아." 이건 누구의 목소리일까요? 바로 씨씨의 목소립니다. 그는 아침마다 씨씨의 목소리를 듣고 샤워하면서 자위를 하고 출근합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만난 어느 여인과 길거리에서 성관계를 가지고 집에 들어왔던 날, 집에는 'I Want Your Love'라는 음악이 매우 큰소리로 울려 펴지고 있었는데, 브랜든은 집에 도둑이 든 줄로 알았지만 알고 보니 여동생 씨씨가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씨씨는 가슴과 음모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채 오빠 브랜든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어떻게 들어왔어?"

"나한테 열쇠를 줬잖아!"

"그럼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오든가!"

"내가 매일 전화를 얼마나 했는데!!!"

 

 

 

 

 

 

난 뉴욕에서 새 출발을 할 거에요.


아일랜드 작은 마을에서 올라온 씨씨는 뉴욕의 클럽에서 가수로 취직을 했다면서 오빠더러 놀러 오라고 합니다. 다음 날, 브랜든은 직장상사(제임스 뱃지 데일, James Badge Dale)와 함께 그녀가 일하는 클럽에서 그녀가 부르는 '뉴욕 뉴욕(NewYork, NewYork)'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벌써 소문이 나기 시작했네요"

"난 오늘 떠나요, 나를 기다리는 그 곳 뉴욕, 뉴욕"

"최고의 승자가 되고 싶어요. 이 작은 마을의 우울증은 녹아 없어질 거예요."

"난 새 출발을 할 거에요, 뉴욕에서..."

 

브랜든은 씨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여동생이 마음을 담아 부르는 이 가사를 가슴 저리도록 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오빠에게 보란 듯이 씨씨는 브랜든의 직장상사와 브랜든의 침대에서 관계를 가집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질투심에 밖으로 뛰쳐나와 달려보지만 오히려 외로움은 더 커져만 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보려 직장동료와 연애를 시도하지만, 상처 입은 그는 동료와는 성관계마저도 할 수 없습니다. 여동생을 제외하곤 사랑을 담은 성관계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창녀를 침실로 끌어들입니다.

 

 

 

 

 

 

퍼즐조각을 맞추는 순간 명작이 된다.


이쯤 되면 왜 브랜든이 결혼제도를 반대하는지 아실 겝니다. 현대의 결혼은 가족끼리는 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는 대체 '가족'이란 굴레가 뭐길래 서로 사랑도 못 하게하는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성의 감정을 느끼면 안되는 것인지, 왜 그게 수치(Shame)스러운 일이어야 하는지 분노합니다. 그래서 씨씨가 "우리는 가족이야. 오빠는 날 보살펴야지."라고 말할 때 그가 분노를 한 것입니다.

 

"난 여태껏 혼자 살아왔어, 난 오빠를 도우려고 해."

"어떻게? 니가 날 어떻게 도와줄 건데? 니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데?"

 

이제야 영화 속의 이해되지 않던, 또는 별 의미 없이 흘러갔던 대사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녀의 팔에 그어진 수많은 자살시도의 흔적은 그녀 또한 현실이라는 결혼제도와 사회통념이 손가락질하는 수치심의 벽에 부딪힌 적나라한 흔적들입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이러한 사랑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논하자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겨먹은 그들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조금은 어려운 은유의 조각들을 잘 맞추지 못한다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 영화지만, 이러한 퍼즐조각을 맞추는 순간, 이 영화는 둘도 없는 명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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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잘 정리된 글 읽기 좋았습니다 저도 님 글보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었는데 브랜든과 씨씨의 관계, 서로에게 남매이상의 의미인가 라는 질문에 맥퀸감독은 영화를 다시 보고 오라고ㅠㅠ대답했더군요.. 만약 둘이 그저 애정결핍의 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 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글을 깔끔히 잘 정리하셨길래 의견을 묻습니다 (혹여나 기분나빠하실까봐^^;)

      • 저와 정 반대로 의견을 남기신 분 글을 봤는데, 공감합니다.
        맥퀸감독의 의견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고요, 극도로 간접적으로 말하게 되면 이런 의견도 나올 수 있다는 걸 적은 거에요.

      • 아침마다 브랜든의 자동응답기에서 나온 음성은 브랜든이 녹음했다가 틀어놓은게 아니라 씨씨가 전화한것들인데요.....주관적인 해석이 조금 과하다싶네요...

      • 씨씨가 전화한게 맞아요.
        전 브랜든이 녹음했다가 틀었다고 한 적이 없답니다.

      • 예전에 그저 야한영화로 알고 봤을땐 뭐 이런 허무한 영화가 다 있나..했는데
        귀하의 해설을 보고 다시 영화를 보니
        가슴 아픈 오누이간의 이루질수 없는 애틋한 이야기네요..덕분에 영화를 더욱 깊이있게 봤습니다

      • 잘 보셨다니, 소정님 감사합니다.

      • 글쓴이님의 다른 글을 읽고 왔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작품을 간단히 설명해놓으셨던데, 서로 사랑하는 남매, 눈치 챈 마을 사람들때문에 뉴욕으로 상경한 브랜든 등 영화 속에서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설명이 많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조심스럽지만 이 리뷰만큼은 아랫분의 의견처럼 '과하게 주관적'이지 않나 해요. 영화의 해석과 감상은 물론 관객의 영역이지만 애초 감독의 의도는 하나죠. 얘기 나눠보고 싶네요.

      • 그냥 제 개인적인 상상을 적었습니다.
        감독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를 수가 있어요. ^^*

      • 근친상간 모티프는 세계 각국의 신화, 설화 , 성경 등 곳곳에 녹아있고 현대까지도 되풀이 되는 소재입니다. 우리나라 설화 ' 달래나 고개'에도 슬픈 사연이 숨어 있지요. 저는 셰임을 억눌러진 욕망을 아슬아슬하게 잘 표현한 걸작이라는 님의 의견에 한표 드리겠습니다.

      • 동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감독이 아니라고하긴했는데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그린것같단 생각이 들어요 동생이란 표현 안나왔으면 당연히 헤어진 연인이라고 생각할듯 저도 남맨데 세상에 그런 남매가 어딨을까싶어요 아무리 서양이라도 다큰 사이에;; 그리고 캐리멀리건 몸매보고 놀랐어요 그래도 배운데 너무 관리안해서;;우리나라면 여배우 못할 몸맨데 나름 핫한 배우가 신기했어요

      • 마자요, 영화를 다시 보고 오라고 해봐야 맥퀸 감독이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게 영화를 먼저 만들었죠.
        여배우는 한국사람의 시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 외국 톱배우들 보면 다들 얼굴 자연산에다 코나 턱이나 어딘가 한 곳이 못생겼잖아요.
        한국인 같으면 벌써 성형수술 했을텐데, 전 티가 있는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여 좋~습니다. ^^*

      • 영화를 다 보진 않고 어디서 짧은 클립만 봤는데도 엄청 괜찮은 영화같아서 찾아보려고요 ㅎㅎ
        흥미롭네요 개인적으로 작품을 감상할때 숙제를 푸는것마냥 작가의 의도만을 맞추는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색다른 감상평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맞습니다. 딴지 거는 사람들 작가의 의도 운운하는 사람이 많은데,
        좀 다르게 생각하면 무슨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그러죠.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자신의블로그에

        2016.05.26 22:08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글도 적을 수 없다면 블로그는 망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니들은 잘들어와서 남의 생각에 엄청난 딴지를 걸고 있잖아. 까기전에 니네 블로그먼저 까보고 까라. 자신들의 생각은 서랍속 일기장에 숨겨놓은채 남의 집에 쳐들어와 까대는 애들은 고소미 먹어봐야 정신차리지.

      • 시원한데요 ㅎㅎㅎㅎ
        전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라 생각해요. 문학작품을 두고 작가의 의도를 해석을 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만든 해석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대학을 못들어가는 비정상적 획일화된 사회구조.
        그렇게 시키는 것만 하라고 교육해놓고선, 대학가면 '창의적'이 되라고 다그칩니다. 웃기는 일이죠.

      • 비슷하게 이 영화를 봤어요. 동의 합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결혼반지 노출, 씨시와의 대화속 암시들. 둘다 합리적으로 통제되는 삶에서 벗어나버림(씨시의 자살시도와 브랜든의 창녀부름)의 바로 앞의 사건이 가족굴레와 마주한 뒤의 사건임(씨시는 유부남과의 일탈을, 브랜든은 유부녀와의 일탈시도)을 기억해보면요.

      • 의견 감사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자유죠.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

      • 님이 이 포스팅을 남긴 시점부터 지금까지 댓글로공격을 받는 이유는 바로 포스팅 제목때문임. 님의 해석은 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점일 수 있는데, 제목은 전혀 그렇지 않음. 마치 "이 영화 이해 안되죠? 자 봐봐요 이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사람의 어그로를 가장 많이 끌수있는 제목에서 거만함이 드러나고, 댓글에서는 고집이 묻어나옴.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어지럽지 않게, 그리고 굉장히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수있는 영화임. 관객이 주인공들의 감정을 충분히 사무치게 느낄수있도록 친절하게 롱테이크씬도 많이 넣었음. 본인의 해석이 또다른 시점이란건 알겠는데, 님의 포스팅은 제목 포함해서 그 어디에도 또다른 해석의 관점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문장이 없음.

      • 구글에 셰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무위키 다음으로 나오는 게시물이 님의 게시물임. 1페이지에 상단에 있는 정보라는 점을 자각했으면 함. 셰임이란 영화의 뜻을 알기위해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잘 못된 정보를 준다는 자각이 없나봄? 그렇다면 더더욱 이 포스팅은 또다른 관점이 아니고 이게 정답이라는 말인거 아님?

        님 글 1문단만 봐도 답 나오는데? 많은 리뷰들이 숨겨진 메타포를 알지 못한다. 잘못 해석들을 하셨다. ---또다른 관점이란 느낌 전혀 못받겠는데?;

        본인은 영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있는거 아니냐고 나의 답글 뿐만 아니라 옛 댓글에도 써놓음.
        근데 정작 본인의 본문에는 님만이 이해하고 있는 메타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말하고있음.

      • 개인블로그에 당연히 "개인 의견임"이란 말이 구지 없어도 개인 의견을 적었겠지요?
        개인적으로 난 그렇게 보였고, 그게 내 의견이고, 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뭐 잘 못된 겁니까?
        그게 잘못이라고 말하는 당신 의견은 존중하겠습니다.

      • 사실 이영화를 볼때, 성중독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하길래. 남자 인생의 숙명적인부분을 다루는 영화인줄 알고 봤습니다. 그래서 왜 영화 제목이 수치심인가를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성장통이라고하잖아요 성장하면서 느끼는 통증이요. 저는 이영화를보고 남자가 죽을때까지 고민하고 겪어야할 성적 고민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접근 자체가 다른거지요. 이 남자는 끊임없이 차오르는 성욕때문에 회사에서도 컴퓨터가 바이러스가 감염됐다고하며 추궁 하고, 또 자주 화장실 집에서 혼자 성욕을 해결하다가 여동생에게 걸려 수치심이 일죠. 즉 저는 다시말하지만 남자가 겪어야할 성장통을 넘어 청년통을 겪어야하는, 그로인해 점점 중독돼가는 어떻게보면 그만큼 성적욕망이 남자에게있어서 지독하다 라고 영화를 봤습니다. 참 재미없었죠. 물론 저는 느낀바가 참 많았지만요. 그러나
        다루어주신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영화를 음미하니까 더욱 재미있고 기억에 남습니다.

      • 저와 완전히 다른 의견. 완전 감사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님의 말씀에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이네요.
        참을 수 없는 성적욕망이 수치심과 결부되고,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감염되듯 욕망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좋네요.

      • 님 제목을 저만의 해석이런걸로 올리시지
        내가 님 리뷰쓴거보고 지생각대로 처 끼워맞춰놓고
        이게 정답이라하네 하면 기분나쁘자나여
        이거 보고 아 이게 숨겨진 메타포구나 하고 어디가서 말했다가 개망신당한사람들도 기분나빠여
        ㅎㅎ 자기 의견 말하는거랑 제목 어그로 끌어서 선동하는건 좀 다름 님경우에는 무지에서 비롯된건데 잘못된거 알아도 아득바득 우기는 케이스지만 ㅎㅎ
        참고로 감독도 이거 근친아니고 근친으로 보면 잘못본거라고 못박았음요~

      • 모나리자를 보고 화가 의도에 맞지 않는 상상을 하면 다 무지한 걸까요?
        감독의 뭐라고 하든 예술영화를 그리 국어책 시 해석하듯 하면 쓰겠습니까?

      • 쉐임 검색하면 금방 보이는 글쓴이의 글. 쉐임 영화의 메타포를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그 메타포가 글쓴이의 생각이고 느낌이라것이 함정. 제목이 글과 글을 읽는 이에게 영향을 줌. 그래서 염려되기도 하나 대게는 이 영화를 보는 수준이 있으시니 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수 있을것임. 아쉬운건은 좋은 나름의 해석을 잘 적어 주셨으나 특정 댓글을 대하는 글쓴이의 고집이 보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더라면 글쓴이의 글이 더 가치있어 보였을 것. (감독은 근친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그렇게 볼수도 있다 했음) 글쓴이는 왜 근친으로 보았나 갑자기 궁금해짐.글쓴이가 틀렸다 아니고 다르다의 문제니 공격은 노노.)

      • 제가 좀 과민했네요. 자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의견 고맙습니다.

      • 프로필사진 어제밤에본영화

        2017.09.18 22:13

        사실 이 평도 그렇고 네이버 영화 리뷰 첫번째에 있는 평도 그렇고 incest로 두고 해석하는게 상당히 잘 드러맞는 부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감독이 아니라니 아니긴 한건데.. 오히려 그래서 더 애매해지는 영화인듯 합니다. 저도 지나가다 의견 하나 남기자면 개인적으로 올드보이나 기타 incest가 들어간 작품을 보면 저는 그 순간 명작이라고는 생각이 불가능하거든요. 물론 Shame은 몰입도도 높고 상당히 분위기를 잘 끌어가는 연출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어찌됐건 저는 스티브 맥퀸 감독의 난해한 감수성과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인 삶의 공허함과 지나친 성욕, 여동생과의 관계, 주인공의 상처 있는 마음 등에 대해서는 확 와닿진 않았고 또 이 영화에 너무 공감되지는 않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단순하고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창문씬하고 마지막 쓰리썸 보고는 주인공처럼 화장실에서 한건 했습니다 ㅎㅎ

      • 영화를 만드는 건 감독이지만 판단은 100% 관객의 몫이지요.
        감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요.
        incest 작품을 명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저는 몇일전에 이 영화를 딱 한번 밖에 못본사람이라 여기에 끼기에는 애매하지만 제가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남매간의 사랑보다는 저는 둘다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그 둘에게 성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던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후반부에 씨씨가 브랜에게 "우리가 나빴던ㄱ 아니야, 우리 나쁜곳에 있었던거지" (?) 라는 대사로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리뷰였어요 앞으로도 자주와서 많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맥퀸 감독은 정황만 보여줄 뿐, 서사를 정확히 끌고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100만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 지나가다가 어쩌다보니 이 글을 읽고 글 남깁니다. 꽤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가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신 것 같네요.
        본문에서 공감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있네요. 브랜든과 씨씨가 평범한 남매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단 그것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전부 갖고있는 이상적인 사람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부러움, 질투, 동경, 애증이라고 봐야지 남매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브랜든은 스스로의 성적 취향으로 진지한 만남을 하고싶어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 동료와 진지한 사랑을 해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불가능했죠. 반면 씨씨는 모든 것을 퍼주는 열렬한 사랑만을 합니다. 실제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브랜든의 직장상사에게도 몸을 허락하며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죠. 그 장면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브랜든에게 보여주듯이 관계를 갖는 것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브랜든이 뛰쳐나간 것이 질투라는 말은 어느정도는 맞을 겁니다. '나도 씨씨처럼 열렬한 사랑을 하고싶다'라는 마음이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갖지 못 하는 씨씨를 상사한테 빼앗긴 질투'의 의미는 아닙니다. 추가로 '여동생과 직장상사가 내 침대에서? 그런데 말릴 수가 없다'같은 답답한 마음이 가장 컸을테고요.
        씨씨는 자신이 살던 곳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대도시에서 새 삶을 살고싶어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브랜든은 뉴욕에서 도시의 삶을 살고 있었구요. 부러움에서 시작한 우울증이 찾아와 자해까지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브랜든에게 전화를 걸며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브랜든은 그 메시지를 씹어버리구요. 그중에는 뉴욕으로 갈 거라는 내용도 있었을 겁니다. 전화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자위를 했다고 하셨는데 정황상 '자위 후 출근이 일상이었다'고 봐야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직장 컴퓨터가 바이러스 감염되어 상사한테 까이는 장면이 있었죠. 그게 근친상간이라는 정신적인 바이러스라구요? 이미 영화 내에서 브랜든은 자기 노트북을 비롯해 항상 야동을 달고 살았습니다. 직장 화장실에서도 자위를 하는 장면에서 직장 컴퓨터로도 야동을 봤다는 부분이 은연중에 나타났구요. 전산팀에서 컴퓨터를 수거해간 후 사용 목록을 본 상사한테 까인 장면인데 어딜봐서 정신적인 바이러스를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난 여태껏 혼자 살아왔어. 난 오빠를 도우려고 해.' / '어떻게? 니가 날 어떻게 도와줄 건데? 니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데?' 라는 대사가 '사랑을 주겠다 / 어떻게 받아주느냐'라고 보신 것 같습니다만 틀렸다고 봅니다. 씨씨는 이미 작중에서 브랜든의 고민을 알아챘습니다. 시작부터 자위하는 모습을 들킨데다 노트북에 수북히 쌓인 딸감까지 다 들켰으니까요. 타인의 애정에 굶주린 씨씨라면 '내가 도움을 주면 나에게 좀 더 신경써주지 않을까? 내가 도와줘야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반면 브랜든은 여동생에게 비밀이 다 까발려진 상태를 참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도 가장 감추고싶어했던 비밀이었고 대상이 남몰래 부러워했던 동생이었다면 화가 나겠죠. 그 분노를 있는 그대로 쏟아냈고 씨씨는 자신의 이상에게 거절당했다는 충격에 약한 멘탈이 부서져 자살기도까지 갔을 겁니다. 이 부분에서 대체 어디에서 남매의 성적 사랑을 찾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영화 제목의 셰임, 부끄러움은 '남매를 서로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비밀'을 말하는 것이 아닌 '남들처럼 평범한 사랑, 평범한 관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동경하면서도 할 수가 없어 고민하는 나의 부끄러움'을 결국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 이라고 봐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해석은 개인의 상상을 너무 부풀려 억지로 끼워맞췄다고 밖에 보이지 않네요.

      • 이게 맞음

      • 저도 영화볼때 남매 사이가 너무 이상해서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끝까지 브랜든 씨씨 남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안나와서 궁금했어요 ㅋㅋ절대 일반적인 남매로는 안보여서 과거에 관계를 가졌는데 그 죄책감때문에 여동생을 멀리하는 건가 아님 이성적으로 사랑해서 그런건가 보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그저 현대인의 욕망과 중독을 보여준다기엔 주인공의 과거가 전혀 안나오고 그렇게 된 인과과정이 없으니까 씨씨랑 근친관계로 해석이 되는것 같아요. 전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전혀 공감이 안갔어요. 주인공 표정에서 고독과 공허는 느낄 수 있지만 이게 어디서 오는건지 설명이 없으니 그저 뻔한 현대인의 우울을 이야기하는 허세섞인 영화로 보이더라고요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럴수 있지만...윗 댓글러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를 이해하기엔 정신이 아직 건강한가 싶네요 ㅋㅋ씨씨랑 근친관계라고 보면 브랜던이 행동이 제일 잘 설명이 되죠 그거 아니면 브랜든이 대체 왜 그런 중독에 빠졌는지 여동생에게 왜그리 차갑게 구는지 설명하기 힘들다고 봐요 몇몇 분들은 감독이 아니라고 했다고 절대 아니라고 하시는데 다들 감상과 의견은 다른거죠 본인의 의견이 맞다고 굳이 강하게 주장할 필요는 없어요. 블로그 주인장님도 저랑 생각이 같으시고 해석과 설명이 풍부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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