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시작점, 인천 가볼만한곳 '개항장'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조선이 건국된 1392년 이후, 전 세계에서 단일 왕조가 500년 이상 이어진 나라는 없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을 갔다고 반박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그 나라는 '제국'이지 왕조가 아니거든요. 물론, 에스파냐왕국이 500년을 유지하긴 했습니다만, 이 마저도 왕조가 아니라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을 왕으로 앉히거나 아무튼 그렇게 왕국을 이어왔었죠. 세상에서 유일하게 왕조로 518년을 이어왔던 조선이란 나라는 일본의 무력시위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 시대를 맞게 됩니다. (고대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통일신라 1,000년, 백제와 고구려 700년 등 우리나라 외에는 왕조가 이렇게 오래간 나라는 없습니다.)

오늘은 일제 식민시대의 시작점이 되었던 인천 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開港場)'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개항장은 인천 중구청 일대의 지역을 말하는데요, 제물포조약(1882년)에 따라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 문물이 유입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각국의 영사관과 일본의 자금줄이 되어준 각 은행이 모여 있어서, 서양에서 들여온 근대 건축물들이 밀집된 곳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어가 볼까요?

 

 

때는 1883년 1월, 조선의 강제적인 개항은 일본의 무력시위 앞에서는  굴복한 꼴이어서 당시 조선이란 국라가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체결된 제물포조약과 그에 따른 개항은 일제식민지시대를 맞게 되는 비운의 단초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세계의 여러나라들과 국교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 사회의 생활방식과 민초들의 의식은 좋든 싫든 새롭게 바뀌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렇게 조선은 근대화의 물꼴을 트게 됩니다.

 

조선에는 총 3곳의 개항장이 있는데요, 그 중 인천의 개항장이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부산과 원산의 개항장은 일본인들의 통상 거류지(居留地-영토 일부에 한정하여 외국인의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지역)인 반면, 인천은 조선의 수도인 서울과 매우 인접해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몰려 들어 서양 근대 문화 각축장의 무대가 되었던 곳입니다.

 

 

 

 

 

 

이곳은 인천시 해안동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한 곳인데요, 도시의 슬럼화를 막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되도록하기 위해 인천시에서 많이 노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자~ 어디부터 가 볼까~

 

 

 

 

 

 

↑ 이곳은 인천 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구(舊) '일본 제1은행'으로 쓰이던 곳입니다. 그게 뭐하는 곳이냐고요? 바다로 들고 나는 물품의 관세를 담당하고, 한국에서 생산된 금을 매입하고, 일반 예금과 대출업무도 했다고 합니다. 관람료는 500원인데요, 1,700원짜리 통합관람권을 구매하시는게 더 싸게 구경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통합관람권은 일대의 박물관을 모두 들어갈 수 있답니다. 가격은 청소년은 1,100원, 얼라들은 800원입니다.

 

 

 

 

 

 

↑ 여기는 인천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입니다. 구(舊) 일본 제18은행으로 쓰였습니다. 나가사키에 본점이 있는 일본 제18은행은 영국 면직물을 한국에 내다팔아 큰 수익을 거두자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목조 트러스 위에 일본식 기와로 모임지붕형태를 하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자세히 보면 정문과 창문 위에 날카로운 못 같은 것들이 거꾸로 박혀 있는데 아마도 새들이 앉지 마라고 해둔거 같군요. ㅎㅎㅎ

 

 

 

 

 

 

↑ 여기는 구(舊) 일본 제58은행입니다. 오사카에 본점이 있었던 일본 제58은행은 인천전환국에서 주조되는 신,구화폐의 교환을 목적으로 1892년에 지점을 설치해 양국간 상품대금 결제와 무역금융을 담당했습니다. 프랑스풍의 벽돌조 2층 건축물로 오르내림식의 창문을 비롯하여 벽체와 기둥은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천시 중구 음식업지부로 사용되고 있나보네요.

 

 

 

 

 

 

↑ 여기는 지금은 인천광역시 중구청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원래는 일본영사관이였습니다. 1883년 일본 조계지(租界地-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구역)에 살고 있는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일본영사관인데요, 1985년부터 인천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장 안에는 치외법권을 누리며 외국인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은 크게 두 곳이 있는데요, 한곳은 청나라 시민이, 다른 한 곳은 일본 시민이 사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청나라 조계지이고요, 일본의 조계지는 오늘 가볼실 '개항장' 일대를 말합니다.

 

 

 

 

 

 

↑ 여기는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위치한 구)'제물포 구락부'란 곳입니다. 그런데 이 계단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서 봤을까요? 혹시 2001년도 TV드라마 '피아노'를 기억하시나요? 조재현, 조민수, 김하늘, 고수, 조인성 이런 배우들이 나왔었죠. 드라마 '피아노'의 대부분을 여기 구)제물포 구락부에서 찍었습니다. 정말 눈물 뚝뚝 흘리며 본 드라마라 기억이 생생하네요.

 

 

 

 

 

 

구락부는 클럽(Club)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제가 일본에 1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맥도날드를 '매구도나루도'라고 부릅니다. 암튼 영어발음 참 독특해요. 이건 사실이에요. ㅋㅋㅋ

 

 

 

 

 

 

암튼 1901년에 지어진 제물포구락부는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인천에 살던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이였습니다. 설계자는 한국 근대건축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러시아 '사바찐(Ssbatin)'이 했는데요, 사교실, 당구장, 독서실과 테니스장 등 사교활동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았습니다.광복 이후에는 미군의 장교클럽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제물포구락부의 옛 모습을 재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각 나라별로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드라마 피나노 이야기하며 보았던 계단을 올라오면 자유공원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한 번 둘러 봐주고 고만 내려갑니다.

 

 

 

 

 

 

산책로가 참 예쁘게 되어있죠?

 

 

 

 

 

 

저 멀리 인천대교도 보이고 인항항도 참 멋지네요.

 

 

 

 

 

 

근대역사문화타운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적산가옥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았습니다.

이 건물은 아웃테리어만 이렇게 해 놓았네요.

 

 

 

 

 

 

이 건물은 적산가옥 같은데,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네요.

 

 

 

 

 

 

비록 오래 된 건물이 많이 남아있진 않지만, 일본 조계지에서는 아픈 역사의 한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인천여행 가시면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만 드시지 말고, 개항장 주변도 꼭 둘러보세요. ^^*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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