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폭풍같은 영화 '언어의 정원'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전문가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 영화들은 대중들에게 혹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영화 <언어의 정원> 또한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제가 볼 때에도 이 영화는 수작이였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와 드라마 등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특히 내래이션이 많은 일본 작품들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오래 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란 일본 시리즈 드라마를 본 후, 제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그 감성을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내래이션이라는 방식은 대사 보다도 훨씬 전달력이 강하고, 감성을 더더욱 고조시키는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영화에서도 이 기법을 많이 채용했으면 하는데, 아직은 그러지 않아 아쉽습니다. <언어의 정원>.... 이 영화는 얼마나 한여름 폭풍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내려가 보겠습니다. (※주의, 스포일러 다수 있습니다.)

 

 

 

 

 

비내리는 6월의 어느 아침 도쿄 신주쿠 공원의 정자에 한 소년 '타카오(이리노 미유)'과 여자 '유키노(하나자오 카나)'가 'ㄱ'자 모양의 벤치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학교도 빼먹고 공원을 찾은 소년은 공책을 꺼내 구두를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안주로 초콜릿을 먹고 있습니다. 소년은 그림을 그리다 지우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여자가 지우개를 주워줍니다. 소년이 여자에게 묻습니다.

 

"우리 어디선가 뵌 적 있었던가요?"

 

여자는 본 적 없다고 말했지만 소년의 교복에 달린 학교마크를 본 순간 "봤을지도..."라며 말을 흐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본의 고전 시가집인 '만엽집(万葉集)'의 한 구절을 읊으며 자리에서 그만 일어납니다.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데..."

 

 

 

 

 

 

소년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시기의 고등학교 1학년인 소년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구두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소년은 비가오는 날 오전엔 신주쿠 공원 정원에서 좋아하는 구두 그림을 그리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여자는 비오는 날 출근하지 않고 정원에 앉아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그녀는 맥주와 초콜릿의 맛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입고 세상이 두렵습니다.

그날 이후로 일본에는 장마가 시작되고 매일 소년과 여자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도심 속 정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계속 비가내리지만 하늘에는 햇빛이 같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는 절망속에서도 희망은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말일까요. 엄마는 띠동갑 남자와 동거를 하겠다며 집을 나갔고, 형도 여자친구와 살겠다며 집을 나가 소년은 혼자서 힘들게 학교를 다닙니다. 그와 그녀는 내리는 비에 위로받고 서로에게 위로받으며 상처투성이의 서로를 조금씩 보듬기 시작합니다.

 

 

 

 

 

 

7월, 장마가 깊어짐에 따라 소년은 여자를 점점 그리워하게되고, 그녀에게 선물할 새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년은 밤에 잠들기 전, 내일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여자도 같은 마음입니다. 나이차이가 한참 있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미각을 잃은 그녀에게 소년은 매일 같이 도시락을 싸와 같이 아침을 먹습니다. 어느 날, 정원에서 만난 여자는 고마운 마음에 소년이 가지고 싶어하던 'Handmade Shoes'라는 책을 선물하고, 반면에 소년은 그녀에게 줄 신발을 만들어주겠다며 그녀의 발을 만지며 치수를 잽니다. 여자가 소년에게 말합니다.

 

"나 말이지. 어느샌가 제대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어..."

 

 

 

 

 

 

소년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매일 맥주와 초콜릿만 먹는 그녀를 어느샌가 조금식 이해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8월, 장마는 끝나고 누군가 스위치를 넣은 것 처럼 거짓말 같이 맑은 날이 계속되는 어느 날 입니다. 여자는 소년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고전'과목의 교사입니다. 그런데 여교사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남학생을 좋아하는 여자의 모함과 괴롭힘에 학교측은 그녀를 해고하게 되고 그녀는 더욱 세상과 단절되어 갑니다. 여자가 자신의 학교 선생이라는 것을 알게된 소년은 놀란 눈치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그는 더이상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어느날 소년은 '만엽집(万葉集)'의 답가로 여자에게 고백합니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겁니다..."

 

 

 

 

 

 

그러곤, 곧 하늘에서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비에 젖은 둘은 여자의 집으로 향합니다.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든 소년은 그녀에게 다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선생의 신분으로 그럴 수 없는지, 애타는 그의 고백을 타이르며 애둘러 거절합니다. 혼자 나아가는 방법을 서로를 통해 터득해 나가던 이들의 사랑은 여기서 끝을 내는 걸까요...소년은 분노하며 그녀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내가 누구든, 무엇을하든, 누구를 동경하든 닿을 리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차라리 내가 싫다고 말을 하라고! 당신은 절대 그렇게 중요한건 절대 말하지 않고, 자신은 상관없다는 얼굴을하고 혼자서 살아갈꺼냐고!"

 

이에 울며 여자가 말합니다.

 

"난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학교를 가려고 했어. 하지만 무서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어. 그곳에서.... 난... 너에게 구해진거야!"

 

 

 

 

 

 

....이 영화에서 비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처음 두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고, 두사람의 심리변화를 비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흩날리는 가랑비, 해가 내리쬐는 맑은 하늘에 떨어지는 여우비, 천둥을 동반한 거센바람과 함께 나리는 폭풍우, 비가 옴으로써 외부와 차단된 도심 속 정원은 오롯이 두사람만의 세계였습니다. 런닝타임 46분간의 한여름 폭풍같은 이 영화는 아련한 첫사랑을 담았던 <초속 5센치미터>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네번째 작품인데요, 서정적이고 경이로운 풍경의 묘사와 빗소리, 그리고 피아노 음율이 매우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마침내 여자에게 줄 구두를 완성한 소년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말합니다.

 

"그때 나아갈 연습을 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언젠가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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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이 12개 있습니다.

      • 영상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초속 5cm는 보고 난 후에는 마음이 조금 쓰렸고 별을 쫓는 아이를 봤을때도 약간 그랬는데 이번작은 다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네요!
        엔딩곡도 좋았구요. ^^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작품은 포스터의 타이틀 문구가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네요. 이 작품 포스터는 여기서 처음 봤는데 역시나 ㅎㅎ

      • 조금 마음이 아팠다가 여자의 마지막 대사로 모든게 풀렸습니다.
        카타르시스가 확~ 밀려왔다고 할까요 ^^*

      • 전 이 작품을 보면서 오랜만의 가슴의 떨림을 느꼇으며 정말 한순간도 눈을 땔수 없는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재미없다는건 참.. 이해가 안되는군요. 정말로
        아마 흔히들 그렇듯 일본과 우리나라의 감성차이 인걸까요.

      • 사람마다 가진 감성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나 봅니다.
        저도 정말 가슴 떨리게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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