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사도세자를 왜 하필 뒤주에 들게 했을까? 영화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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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권력의지가 사도를 역적으로 만들다?

 

조선후기 역사 속에서 가장 황금기를 들라하면 영조, 정조 시대일 겁니다. 그런데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들라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영조와 정조 사이에 있었던 사도세자사건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일 겁니다. 임오화변은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살해된 엽기적인 사건인데, 어머니가 죽일 것을 청하고, 아버지가 죽이라 명하고, 장인이 앞장서서 집행해버린 조선의 역사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연출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왕과 세자 사이의 비극을 어쩔 수 없었던 '운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겁니다.

영조(송강호)는 무수리인 숙빈 최씨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장희빈의 아들이자 이복형인 경종이 있었던 터라 왕위계승은 불투명했지만, 병약했던 경종이 죽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영조는 재임 내내 경종 독살설 등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고,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는 왕권강화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다음 왕인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도(유아인)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몰아세우며 닦달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사도세자는 숨통을 조여 오는 스트레스로 훗날 기이한 행동을 하며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영화 내용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 <사도>는 영조의 권력의지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영조는 사도에게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옛말에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란 말이 있죠. 이것은 "나는 임금에 자리에는 욕심이 없다."라는 영조의 말과는 반대로 재임기간이 무려 63년에 달한다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으며 83세까지 사망 직전까지 선위를 하지 않고 왕권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도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긴 시간 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땐 영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대신들에게 잡힌 약점도 있었지만, 사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싫었던 점도 분명 있었을 거라 봅니다. 이준익 감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가져오는 비극에 대해 깊이 들어다보고 있습니다.

 

 

 

 

 

사도를 뒤주에 들게한 진짜 이유는?

 

그런데 왜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두고 죽였을까요? 애초에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칼을 던져주며 자결을 하라 명하지만 대신들의 만류로 뒤주에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아마도 즉흥적으로 나온 발상이 아니었고 대신들의 만류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생각이었을 겁니다. 영조는 콤플렉스를 가진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경국대전에는 죄명을 받아 형벌을 받은 자의 자손은 왕이 될 수 없었으니, 자결을 하도록 내벼려 두거나 죄명을 만들어 사약을 내릴 수도 없었던 영조는 세손인 정조의 왕위 계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뒤주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기다렸던 겁니다.

 

처음에는 뒤주가 아니고 칼을 주며 자결을 명하기도 했고, 사도가 옷을 찟어 스스로 목을 매려고도 했고, 돌계단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고 시도도 했으나 매번 신하들이 막았습니다. 그리고 영조가 사도를 죽이러 온다는 소문이 돌면 동궁 관리들은 대부분 도망가버렸습니다. 역적을 보필한 자들도 같이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그런데 귀향을 보내 객사하도록 내벼러 둬도 됐을 것을 왜 하필 뒤주에 가뒀을까요? 이는 조선이란 나라에서 역적이 처분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적은 혼자 죽는 게 아니라 그 집안 일가족과 추종세력이 모두 몰살되는 거였죠. 그러니 신하들도 모두 목숨을 걸고 말린 거였고, 영조 또한 세손인 정조를 생각하면 반역죄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에게서 뒤주 아이디어가 나왔고 사도가 스스로 들어가도록 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영화에서는 뒤주에 가둔지 8일째 되던 날, 아비가 어쩔 수 없이 아들을 가둔 부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떠나 실제 그러했을 아비의 마음을 감독이 표현한 걸 겁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7일째 되던 날, 신하들에게서 사도가 죽은 것 같다는 보고를 받지만 확실치가 않으니 하루 더 놔두라고 명령합니다. 8일째 되던 날, 사도의 죽음을 영조가 직접 확인했다고는 하지만, 영화처럼 대신들 앞에서 목 놓아 울부짖으며 아비의 사랑을 표현하진 않았겠죠. 영화는 사실과 다르지만 그 나름의 예술적 가치를 가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조의 아비와 왕 사이에서의 갈등과 사도세자의 망가져가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는 정조의 춤사위가 가슴이 아리네요. 이 영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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