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부터 조선까지 국토의 중요한 길목 '미륵대원지' | 충주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상으로 나를 떠미는 것

충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운데 위치한 교통의 요지 중의 요지입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충주의 하늘재를 지나 문경의 문경새재로 들어가야 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요. 현재는 이곳이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데, 월악산은 충주, 제천, 단양, 문경에 한 자락씩 몸을 걸치고 있는 산인데, 봉우리가 많은 산이라 계곡 또한 많은 산으로 유명하죠. 한 날, 날 잡아서 모두를 둘러보고 싶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하늘재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미륵대원지를 먼저 둘러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쓴 문경새재 글에서 원(院)터에 대해 말씀 드린 적이 있어요. 원은 옛 역참체제의 중심이 되는 곳인데 주요한 길을 따라 만들어진 쉼터 같은 곳입니다. 말을 돌보고 여행자들에겐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편의시설 말입니다. 하늘재로 올라가는 이 길목에도 미륵리 원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군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옛날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들고 다녔을까요? 지금처럼 지폐가 있지 않던 시절에 쇠뭉치로 된 돈을 전부 짊어지고 다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원이나 주막 같은 곳이 지금의 은행업무도 대신 보았어요. 돈을 가진 사람은 주막에 돈을 맡겨두고 맡겨둔 금액에 대한 서류를 받습니다. 그리고 다른 주막에 가면 수표 같은 문서를 한 장 써주고 훗날 정산하는 시스템이었죠. 아무튼…

 

 

 

 

 

 

미륵리 원터 옆으로는 미륵대원지란 옛 절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동쪽으로는 하늘재가, 서쪽으로는 지릅재 사이의 분지에 위치해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은 지리적 여건상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군사적,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경내에는 지금도 석불, 석탑, 석등, 당간지주, 돌거북 등 유물들이 남아 있는데, 고려시대 화려했던 절간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미륵대원지 입구 오른쪽에는 당간지주를 고정하는 석대가 자리하고 있네요. 이곳이 사찰의 입구였나 봅니다. 당간지주는 하늘로 길다란 장대를 올려 그 꼭대기에 깃발을 매달아 두었던 기둥인데, 이곳이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냅니다. 지주 윗부분 바깥 면에 연꽃무늬를 양각해 둔 것은 아주 희귀한 사례라고 하네요.

 

 

 

 

 

 

입구 왼쪽으로는 아주 큰 거북모양의 돌이 있는데, 이건 비석을 고정하는 받침대에요. 현재 비석은 없던데 수 차례에 걸쳐 주변을 발굴해봐도 비석조각도 안 나왔다는 걸로 봐서는 비석을 세우려는 시기에 전쟁 등으로 설치하지 못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누군가 비석만 뽑아 가져갔을 수도 있겠군요.

 

 

 

 

 

 

사찰이 한 단계씩 거쳐 올라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군요. 한 단계마다 탑이나 석등 같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꽤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시는 높이 6미터의 오층석탑은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95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다층 탑들은 비슷한 모양을 한 게 많네요. 여주 신륵사의 전탑 또한 모습이 이것과 유사합니다.

 

 

 

 

 

 

원래 탑 속에는 보물이나 문서들을 숨겨 두었었죠. 오층석탑의 바닥을 이루는 기단면석은 바위를 파내어 만들었는데, 옆 부분에 큼직한 구멍이 나 있고, 주변의 돌 모양이 사람이 파낸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 옛날 누군가 도굴을 했던 거 같네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오층석탑 뒤로는 사각석등이 하나 서 있어요. 이 석등은 기존의 사찰에선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벗어나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만들어진 비슷한 모양의 석등이 현재 고구려 수도였던 북한의 개성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네요. 제 눈엔 조그만 팔각석등 보다 사각석등이 훨씬 더 시원스럽고 기개가 있어 보입니다.

 

 

 

 

 

이제 거의 미륵대원지 끝까지 올라왔습니다. 사각 석등에 이어 이번엔 팔각석등이 하나 놓여 있네요. 아까 보셨던 고려시대의 사각석등과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팔각석등이 한 사찰에 함께 공존한다는 건 통일신라문화와 고려의 문화가 당시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는 걸 말하는 거겠죠. 석등 옆으로 난 작은 구멍으로 석불입상을 바라보면 석불의 얼굴이 딱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석불입상이겠죠. 현재 보물 제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주변의 돌과 석불을 가만히 보면 이끼가 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석불의 정확히 얼굴 부분에만 이끼가 끼지 않아요.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것에도 목 아래에도 이끼가 끼는데 같은 재질로 만든 돌에 저 부분만 왜 이끼가 끼지 않는지 전문가도 모른다고 하네요.

 

 

 

 

 

 

돌을 쌓은 주변 구멍으로는 불상들이 있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훼손되고 몇 개 남지 않았네요. 지금도 조금씩 붕괴가 되고 있어 조만간 복원공사를 할 계획이라고 하니, 복원되면 또 어떤 모습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특이하게 이 석불은 북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어요. 여기에는 신라 마의태자의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신라는 신흥세력 고려 왕건의 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자 항복을 하게 되는데, 이에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래고자 월악산 자락에 덕주사란 절을 세우고 남쪽을 향한 마애불을 조성하자, 오라비인 마의 태자는 덕주사의 방향인 북향으로 석불을 세워 서로 바라보고 있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잃었을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석상 주변을 보면 돌 벽이 둘러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에는 석굴암이 있죠. 이곳도 원래는 석굴암을 모방해 주변에 석벽을 쌓고 지붕을 올려 석굴형식의 불전이었어요. 주변에 석굴암의 감실(龕室)처럼 홈을 파고 작은 불상들을 넣었을 겁니다. 지금은 나무지붕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거죠.

 

 

 

 

 

 

충주는 사과로 유명한 도시죠. 미륵대원지를 가는 길엔 온통 사과밭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요. 참 기분 좋은 곳이네요. 차를 가지고 이곳에 오실 분들은 중부고속도로 충주나들목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3번 국도를 달리다 월악산 방면의 597번 지방도를 타고 오시면 됩니다. 버스를 이용하실 분들은 충주버스터미널에서 246번 시내버스를 타고 미륵리 사지에서 내리시면 되겠습니다. 사과밭을 지나 미륵대원지를 만나고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하늘재 산책로를 만나게 될 거에요.

 

 

8편 계속...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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