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궐 밖 조선에서 가장 큰 집 '강릉 선교장' | 강릉 가볼만한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조선에서 일반 사대부 양반은 최대 99칸의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100칸이 넘는 집은 왕족만이 가질 수 있었는데, 강릉 선교장은 100칸이 넘어 궁궐 밖 조선에서 가장 큰 규모에요. 이는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후손이 살 던 곳이라 그렇습니다. 조선은 철저한 법치주의에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이런 걸 경국대전에 법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당시 조선의 왕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를 엿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선교장(船橋裝)이 무슨 뜻일까요? '선교'란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넌다는 뜻인데, 이곳 앞이 예전엔 경포호수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지금은 경포호수가 줄어들어 논이 되었습니다. 집터는 배산임수의 대단한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대대로 크게 번창했고 집들이 많이 지어졌어요. 건물은 솟을대문에 딸린 행랑채와 안채, 그리고 사랑채, 별당, 사당, 정자, 연못까지 갖춘 완벽한 사대부집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큼지막한 연못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이건 정원에 판 인공 연못인데 끝의 활래정(活來亭)이란 정자가 독특합니다.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와 돌기둥이 정자를 떠받치고 있는 ㄱ자 형태의 건물이에요.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정과 모양이 흡사한데, ㄱ자 모양의 지붕이 이어지지 않고 잘려 있는 게 특이합니다. 해설사님께 "왜 지붕이 저렇게 되었을까요?"라고 여쭤보니 원래 연못 가운데 섬에 있던 정자를 연못 바깥으로 옮기면서 이어 붙여서 그렇다고 하네요.

 

 

 

 

 

 

달빛이 내리는 월하문으로 들어갑니다.

 

 

 

 

 

 

활래정에서 차를 마시면 물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 들겠네요. 연못 바닥을 최근에 한 번 뒤집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연잎이 많이 없어진 모습입니다.

 

 

 

 

 

 

정자 처마 아래로는 선비들이 쓴 글귀들이 걸려 있어요. 글을 세긴 판들이 왜 여기 붙어 있을까요? 옛날의 선비들은 다른 집에서 하룻밤 대접을 받으면 돈을 주고 받는 걸 수치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후하게 대접받은 댓가로 좋은 글귀들을 적어 선물했는데 그걸 정자 처마 아래에 빙 둘러 붙여 둔 겁니다.

 

 

 

 

 

 

잘 관리된 잔디 맞은 편으로 건물이 몇 채 보이네요. 이 건물들은 한옥스테이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한국전통문화체험관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이제 본채로 들어가 볼게요.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에요.

 

 

 

 

 

 

낮은 담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기와지붕과 그 뒤편으로 수령이 5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이채롭습니다.

 

 

 

 

 

 

본채 솟을대문으로 들어갑니다. 조선시대에는 남여가 유별하여 비록 부부나 부모자식 간이라고 하더라도 기거하는 건물이 달랐고, 심지어 출입구까지 남여가 다른 곳을 사용했어요. 솟을대문 오른쪽으로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으로 여자들은 다녔습니다. 현판엔 '선교유거'라 적혀 있는데 '신선이 사는 그윽한 집'이란  뜻입니다. 멋지죠?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은 열화당(悅話堂)입니다. 순조15년(1815)에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대청 앞에 이질적인 모습의 차양이 있죠? 저건 구한말 개화기 때 설치된 차양인데, 러시아 공사관 직원이 선교장에 머물렀다가 그 보답으로 선물한 겁니다. 선물이긴 하지만 여기엔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가 숨어 있어요. 구한말 당시는 서방 제국들이 조선 침략의 일환으로 인구, 농업, 광물자원, 문화, 유적 등에 대해 전국산업조사를 벌였는데, 그때 러시아 공사관 직원들이 한국의 상태를 샅샅이 조사하며 머물렀던 겁니다.

 

 

 

 

 

 

마당 한 가운데 능소화가 활짝 피었네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마당에는 나무를 잘 심지 않았는데, 가끔 마당 가운데 나무가 심어져 있는 사대부집들을 볼 수 있죠. 그건 마찬가지로 대접받은 손님이 나무를 선물하면 심기도 한다네요. 풍수지리에 의하면 담 안의 나무가 지붕보다 높이 자라면 좋지 않다고 해서 나무가 지붕보다 높이 자라지 않도록 뿌리 아래에 돌을 넣어 심었다죠.

 

 

 

 

 

열화당 바로 앞은 총 23칸의 행랑채가 길게 서있습니다. 이곳은 하인이 머물던 곳이 아니라 아이들과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한옥스테이 숙소로 이용되고 있어 하룻밤 고택체험도 가능한 곳입니다. 몇 년 전 비오는 날, 경주 독락당 '역락재'에서 머물었던 적이 있는데 비오는 날 고택체험은 정말 꿀맛입니다.

 

 

 

 

 

 

이제 작은 문을 따라 여자들이 머물던 공간으로 가볼게요. 바닥에 박아 놓은 작은 박석들이 예쁘네요.

 

 

 

 

 

 

ㄱ자로 생긴 이곳은 1703년에 지어진 안채주옥입니다. 선교장의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 이씨가의 살림을 맡은 여인들이 거처하는 곳이죠.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고, 부엌은 안방 쪽에 붙어 있습니다.

 

 

 

 

 

 

안채 바로 앞에는 마찬가지로 ㄱ자 모양의 동별당이 있는데, 여기엔 집안의 딸들과 여자 손님들이 주로 머물렀습니다. 그런다 바닥에 아주 작은 문이 하나 달려있죠? 저기로 들어가면 불을 때아궁이가 나오는데, 노비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노동절 같은 '노비의 날'이 2월 초하루에 있었어요. 그날은 노비들에게 먹을 것을 마음껏 먹게 해주고, 돈도 주고, 일도 시키지 않았다고 해요.

 

 

 

 

 

 

초가집을 따라 난 길을 올라 언덕 위로 한 번 올라가 볼까요? 어차피 신발에 물은 다 들어갔고 이판사판입니다. ㅎㅎㅎ

 

 

 

 

 

 

초가집을 돌아가니 길에 석류꽃이 우수수 떨어져 있어요. 꽃이 다 떨어져서 석류가 조금 밖에 안 열리려나요?

 

 

 

 

 

 

언덕을 조금 올라오니 수령이 수백 년은 넘은 소나무들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요. 마치 경주 삼릉의 소나무 숲을 보는 것 같네요. 정말 장관입니다. 열화당 뒤로는 수령이 520년이 넘은 소나무도 있습니다.

 

 

 

 

 

 

워낙 부지가 넓어 선교장 전체를 한눈에 다 볼 순 없지만, 언덕을 올라 오니 대략 규모를 가늠할 수 있네요. 눈에 보이는 건 전체의 절반 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소나무 숲에 둘러쌓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활래정과 연못도 보입니다. 사진 오른쪽 위가 지금은 논인데 예전엔 저쪽이 경포호수였다는 거죠. 그래서 배로 다리를 만들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해서 '선교(船)'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대궐 밖 조선에서 가장 큰 집인만큼, 강릉여행에서 한 번쯤은 가볼만합니다. 명당자리라고도 하니 여기서 좋은 기운 받고 좋은 일들 많이많이 생기시길 바라겠습니다.

 

+ 관람시간 : 하절기(3월~10월) =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월~2월) = 오전 9시~오후 5시

+ 관람료 : 성인(19~64세) 5,000원, 청소년(14~18세) 3,000원, 어린이(8~13세) 2,000원

 

 

4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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