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커피전문점을 운영할 때 여유시간이 아주 많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책을 일년에 100권을 넘게 보던 시절이였죠. 당시 제가 본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책이 바로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1,2,3>이였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시리즈중 1편을 영화화 한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입니다. 이 영화가 총 3부작으로 기획되긴 했는데, 앞으로 2-3편이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오늘은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앞으로 개봉할 <밀레니엄> 시리즈의 영화 이야기 전개를 살짝 들여다보고,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고발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스포는 심심찮게 나올 예정이니 영화를 블라인딩으로 꼭 보실 분들은 뒤로가기 누르세요.
1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폴란드의 차관자금을 빼돌려 크로아티아 우익단체에 지원하는 금융재벌인 '한스 에리크 베네르스트룀'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써 소송에 시달리다 끝내 결정적 증거부족으로 패소한 주간지 <밀레니엄>의 기자이자 공동투자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크 분)는 그간 쌓아온 명성과 재산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재판에서의 패소덕분에 감옥에 갈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최고의 재벌인 '방예르' 그룹의 총수 '헨리크 방예르'(크리스토퍼 플러머 분)로 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 옵니다.
"추악한 사람들을 조사해주게. 바로 내 가족들 말일세."
헨리크는 표면적으로는 죽음이 머지않은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부탁하고 있지만, 사실은 40년 전 단서 하나 없이 집에서 사라져버린 손녀딸 '하리에트' 살인사건의 진실을 비밀리에 조사해달라며 잡지사 '밀레니엄' 두배의 보수와 함께 베네르스트룀과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증거자료를 주겠다며, 거부하기 어려운 솔깃한 제안을 해옵니다.
불행했던 어린시절을 보낸 뒤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정보분석력, 그리고 컴퓨터 해킹실력 등으로 '밀턴 시큐리티'라는 보안업체에서 비밀조사업무를 담당하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 분)는 미카엘의 자료수집과 분석을 돕기위해 조수로 고용되어 그와 함께 하리에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 갈수록 방예르 가문과 관련된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고 이들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스티그 라르손'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아름다운 풍경의 스웨덴을 배경으로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이 영화는 스웨덴에서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총 3부작(6권)으로 출간된 뒤 전세계 46개국 총 6,50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원제목은 <용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인데 원작자인 스웨덴 소설가 스티그 라르손(1954~2004)은 극중 인물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같은 언론인 출신입니다. 반인종주의 잡지 '엑스포'를 공동창간해 편집장으로 실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반대세력의 암살위협에 실제로 시달리기도 했었죠.
그는 애초에는 이 소설을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총 10부작으로 '밀레니엄 시리즈'를 구상했지만 3부작까지 탈고를 마치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해서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샀었습니다. 그중 한명도 바로 저이구요. 하지만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32년간 살아온 스티그 라를손의 부인이 4부 <신의 복수(가제)> 원고를 가지고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인세의 유산상속(라르손의 아버지와 시실혼 관계의 부인간에) 문제로 아직까지 출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빨리 독자들을 위해 상속의 문제가 해결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세기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원작과 계속 비교하게 되는 어찌보면 태생적으로 매우 큰 핸디캡을 안고 가야만 합니다. 제가 본 영화들 중에서는 아직까지는 원작인 책의 표현력을 뛰어 넘은 영화는 없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왜냐면 소설로는 아주 자세하고 상세한 부분까지 표현을 할 수 있고 독자의 상상력까지 더해져서 어떠한 형태의 장면과 상황도 모두 그려낼 수 있지만, 그것을 직관적인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데는 시간/공간적/기술적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죠.
인간의 심연에 자리잡은 '폭력'을 말한다.
이 영화 의 겉으로 들어나 있는 모양새는 '타락한 비리자본과 추악한 모습을 가진 재벌가 가족에 대한 진실규명' 같이 보이지만 사실 '스티그 라르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단편적인 '진실규명'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1편을 비롯한 앞으로 나올 영화 2,3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언뜻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크)'라는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 같지만,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서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 천재해커가 될 것입니다.
미카엘은 잡지 '밀레니엄'을 통해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 하려고 합니다. 미카엘의 이러한 규칙을 위반한 자들을 상대로 하는 '고발'은 개선이 가능한 사건들입니다. 즉, 고발을 통해서 불법을 저지른 회사는 개선되고 타락한 자본가는 퇴출 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미카엘이 생각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방식입니다. 미카엘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마르틴을 딸조차 강간하는 미치광이 아버지의 폭력의 희생양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리스베트는 말합니다. "모두 엿같은 소리, 모든 폭력은 그가 선택해서 저질렀을 뿐이다", "그저 여자를 증오하는 쓰레기 중 하나 일 뿐이라고..." 영화는 개선되기 힘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책이든 영화든 아무튼 <밀레니엄>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입니다. 지구상에서 남녀평등, 민주주의, 복지가 우수하게 정착되어 있는 스웨덴 안에서 스웨덴의 1등 기업의 대표 '마르틴'은 소외된 여성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리스베트'의 아버지 '살라첸코'는 리스베트의 엄마를 때리며 학대하고, 리스베트의 후견인 '닐스 비우르만' 변호사는 그녀를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강간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 모든 행동들은 남성들이 힘의 우위를 앞세워 여자들에게 행하는 폭력입니다. 이러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폭력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리스베트는 자신의 아버지가 엄마에게 행한 모든 폭력적인 행동을 '모든 악' 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소설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챕터와 챕터 사이에 있는 다음의 문구는 그 폭력성 앞에서 잠재적인 피해자로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공포와 일상의 고단함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여성 중 46퍼센트가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자신을 무참하게 강간했던 '비우르만' 변호사의 몸에 치욕적 문신을 새겨 보복했던 '리스베트'는 밀레니엄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는 '모든 악'의 근원인 아버지 '살라첸코'를 없애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은 법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답답한 현실을 비꼬고 있습니다.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스티그 라르손의 죽음으로 안타깝게도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 버렸습니다. 3부에서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아버지인 살라첸코와 연관이 있는 국가 비밀조직이 주축이 되어서 리스베트를 정신병원에 가둘 목적으로 재판이 이루어 집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혹시 기억하십니까? 몇 년 전에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은 정의 신드롬에 차 있었죠. 이는 "다수를 살리기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과연 정당한가?"가 화두였습니다. 국가안보와 망명한 첩보원 '살라첸코'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소녀를 오랫동안 정신병자로 내몰아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은 '정의'입니까? 국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녀 한명을 가두는 것은 아주 손쉽고 간편한 일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수의 희생으로 반사이익의 혜택을 누리는 다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닐까요?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전쟁전범들은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독가스를 사용하는게 무슨 죄가 되느냐' 라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밀레니엄1,2,3>는 권력기관의 잘못된 윤리관이 소수의 약자들에게 얼마나 고단한 삶을 선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의 약자인 '살란데르'의 무소불휘 권력에 대항하는 행위는 같은 처지인 관객에게 묘한 동질감과 통쾌감을 전합니다. 책에 비해 인물묘사나 상황전개가 압축되어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 어떤 사건은 아예 빠져버린 경우도 있었지만(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눈치 못 챌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복잡한 등장인물과 스토리 구조를 가진 미스테리 스릴러물에서 이정도 퀄리티로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데에 '데이빗 핀처'감독에게 박수를 안쳐 줄 수가 없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안타까움을 내 비친체 내리막을 내려가는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2부에서 최종병기가 되어서 '모든 악'과 어떠한 대결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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