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으로 할 수 있었던 일들...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오늘은 제가 어릴적 놀던 때를 기억하며 당시 추억의 물건을 통해 그때를 기억해 봅니다. 100원으로 할 수 있던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글에 등장하는 물건들의 시대적 배경은 1970 후반 ~ 1980년대 초반입니다. 30년이 훨씬 넘은 기억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때 그시절로 들어가 볼까요?

 

 

 

 

 

 

▲ 딱지 대략 70장 붙어있는 한판이 20원 했었죠. 100원으로 5판 살 수 있었음.

가끔 비싼 것은 30원짜리도 있었는데, 3판사면 10원이 남았음.

남는 10원으로는 5원짜리 사탕 두개를 사먹으면 딱 맞았다.

 

 

 

 

 

 

 

▲ '다그램' 이란 케릭터 장난감. 일명, 마스코트가 100원.

출시후 인기가 좋아져서 1년 후에는 200원으로 올랐음.

위 사진은 다르램 마스코트 사진을 찾을 수가 없어 책으로 대체.

 

 

 

 

 

 

▲ 펌프말 100원, 고무물총 50원.

펌프말은 아버지가 소주한잔 드시고 사 오셨고,

고무물총은 구조상 거꾸로 들고 쏴야 속에 든 물을 끝까지 쏠 수 있음.

너무 쎄게 누르면 총구의 뚜껑까지 슝~~ 날아감.

 

 

 

 

 

 

▲ 구슬은 3개 10원, 100원으로 30개 살수있었다.

물가는 계속올라 어느날 2개 10원.. 그리고 1개 십원.

아버지 와이셔츠 박스에 한 가득 담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음.

 

 

 

 

 

 

▲ 오락실 한 게임에 50원, 두 판 가능!

겔러그는 총알버그로 50원으로 하루 종일 할 수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가 100원 주면서 내쫒았음.

1980년대 들어서서 중학교 2학년때 오락실 업주들 간의 다툼으로 한 판 10원으로 추락한 적도 있었음.

 

 

 

 

 

 

▲ 뽀빠이 한 봉지 20원.

요즘보다 별사탕이 더 많이 들어있었고,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남.

돈주고 산 것보다 몰래 훔쳐먹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음. 주인어른 죄송합니다.

 

 

 

 

 

 

▲ 라면 한봉지 90원.

원래 삼양라면이 대세였는데, 농심에서 형님먼저 아우먼저 광고가 대박터지면서 역전됬음.

 

 

 

 

 

 

▲ 쫀디기와 아폴로 30원.

고무과자로 많이 불렀는데 지역마다 명칭이 달랐을거라는 생각됨.

대략 20센티의 길이에 30여가닥이 붙어있었는데 성질급한 친구놈은 한 입에 배어물고, 난 한가닥 한가닥 실을 뽑듯이 떼어먹었음.

아폴로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손까락으로 눌러서 한번에 쪽~ 빨아먹는 맛이 최고였다.

마찬가지로 성질급한 그 친구는 입에 몇개씩 한꺼번에 넣고 껌씹듯 씹어서 단물을 빼먹었음.

 

 

 

 

 

▲ 모나미 153볼펜 60원. A4 똥색용지(똥종이라 불렀음) 10원에 4장.

낙서 좋아하는 나는 가끔 50원들고 똥종이 사서 하루종일 낙서하고 놀았음.

요새 것에 비해 볼펜의 품질이 안 좋았는지 손가락끝에 볼펜 잉크 묻어서 대략 속상함.

153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는 신약성서 내용이다.

 

 

 

 

 

 

▲ 지우개 30원, 비싼건 50원.

지우개 따먹기에는 점보지우개와 I♡TEACHER 지우개가 갑이였음.

 

 

 

 

 

 

▲ 뽑기 한번에 50원. 200원내면 5번 시켜줬음.

설탕을 연탄불에 녹여 멋지게 붕어와 칼을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빨어먹던 뽑기아저씨.

한 번은 줄 잘맞춰 대형 붕어걸렸는데 아저씨 그거 깨졌다면서 그것보다 작은거 주길래,

새로 만들어 달라고 난리난리쳐서 기어코 3시간만에 받아옴.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떨어뜨려 다 깨졌음. ㅠㅠ

 

 

 

 

 

 

▲ 번데기 작은 고깔 50원. 큰 고깔 100원.

예전엔 신문지를 고깔 모양으로 말아서 거기에 번데기를 담아 줬다.

사실 고깔의 크기 차이는 거의 없었서 50원짜리 2개를 사먹는게 이익이였음.

 지금도 번데기 무지좋아하는데 옛날의 그 맛은 어디서 사먹어도 더이상 안남.

 

 

 

 

 

▲ 솜사탕 100원.

동물원이나 부산 용두산공원가면 엄마한테 사달라고 떼써서 꼭 사먹었음.

윙윙 거리는 기계의 가운데에 설탕 한 숟가락 집어넣었을 뿐인데, 그게 어찌 솜사탕이 되는지 아직까지 미스테리임.

 

 

 

 

 

 

▲ 아버지의 소주 한 잔 100원.

내가 살던 바닷가 선착장에는 꼭 한두군데의 포장마차가 있었다.

소주를 한잔씩도 팔았는데 요즘 바(BAR)에서 양주를 키핑하듯 소주를 포장마차에 키핑할 수도 있었다.

한잔에 백원. 김치쪼가리 안주는 물론 공짜. 아줌마 기분좋으면 고기 한조각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고등학생 시절, 소주한잔과 담배 한 가치를 포장마차에서 샀던 기억이 난다. ㅡ,.ㅡ

 

 

 

 

 

 

▲ 우표 60원. 편지봉투 편지지 30원.

누구나 편지를 쓴다는데 대해 무척이나 큰 국가적 사명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국군아저씨께 위문편지를 보내야만 했고, 남학생에게는 답장이 절대 오지않았다.

군대 우편검열이 있으니까 욕은 쓰지마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셨다.

 

 

 

 

 

 

▲ 폭음탄/콩알탄 100원.

다른 동네에선 폭음탄이 콩알탄보다 싸다던데, 우리동네에서는 같은 가격이였다.

콩알탄은 안방 문고리에 올려 두면 울엄마 열때마다 팡팡 터졌고, 한 번은 내 면상 맞아 터진적도 있다.

폭음탄은 불붙여 누가 오래들고 있나 내기한 적있는데, 내 손에서 터졌는데 아무 느낌없었음. 그뒤로 동네영웅됨.

어쩌다 길가는 아줌마 머리에 폭음탄이 떨어져 터진적이 있었는데 도망갔음.

들리는 말로는 그 아줌마 머리 가운데가 썰렁해졌다고 하던데 확인한 적 없음.

 

 

 

 

 

 

▲ 쪽자(달고나) 한번에 설탕은 20원, 하얀색 각진 덩어리로 되어있는 건 30원.

만약 모양을 찍어서 핀으로 꾹꾹 눌러 떼어 내는 '미션'을 할 경우에는

성공하면 한번 더 또는 작은 설탕 금붕어를 줬었다. 저게 쉬워 보여도 정말 정말 어렵다.

 

 

 

 

 

 

▲ 핫도그 50원.

케찹은 먼저 핥아 먹고 빨간 쏘세지는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고 겁떼기 먼저 먹던 시절.
마지막 쏘세지만 먹으면 되는데...그러면 되는데...땅바닥에 떨어뜨려 운 적이 있다.

 

 

 

 

 

 

▲ 만화 한 권, 만화방에서 보면 50원, 빌려가면 100원.

이현세, 고행석, 박봉성, 이보배씨등 유명한 만화가들이 많았다.

불청객시리즈, 꺼벙이 시리즈, 신의 아들 등 느와르 장르도 많이 봤던 기억이 있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만화방에서 먹는 쥐포와 라면이라는 사람도 있었음.

 

 

 

 

 

 

▲ 쭈쭈바 20원. (사진은 아이차임.)

동네 구멍가게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박스(사진 왼쪽)에 드라이아이스와 같이 들어있었다.

시골인 우리동네는 '근대화 슈퍼'라는 이름을 달고 80년대 중반부터 냉장고가 있었던 것 같다.

먹고나면 혓바닥 색깔이 변해서 무슨 맛을 먹었는지 대략 알 수 있는데, 난 파란색을 좋아했음.

80년대 들어서면서 가격이 올라 50원으로 올랐던 기억이 난다.

 

 

 

 

 

 

▲ 공중전화 20원(3분).

친구에게 전화하기 위해 동네 큰 길로 나가 공중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도 없고 집집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친구에게 "전화해"라는 말은 "우리집 부자야~"라는 말과 동급이였다.

전화가 없는 집에 급한 연락은 우체국에서 '전보'를 보냈던 기억이 있음.

 

 

 

 

 

 

▲ 연탄 1장 100원.

연탄은 100원인데 배달비가 붙어서 110원 정도 했던거 같다.

아부지가 가끔(?) 돈을 가져오시면 만원으로 연탄 100장씩 한꺼번에 샀던 기억이 난다.

연탄 100장이 집에 배달되어오는 날, 엄마의 행복한 눈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난 어려도 남자라고 엄마가 연탄 가는 일은 꼭 날 시켰다.

보통 푸세식(재래식) 화장실 구석에 연탄을 같이 보관했었다.

 

 

 

자, 어떠세요?

불과 몇 십년 전이지만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정말 먹을 것도 흔하지 않고,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난이지만, 젊은 시절은 항상 그리운 법입니다.

이 시절의 젊었던 우리 엄뉘, 아부지가 보고 싶네요. 시골 엄마한테 전화한통 할까봐요.

 

엄마, 잘 계싱교?

 

 

참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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